오늘 코스피는 장중 12.08% 폭락했다. 기록을 열어 보면 이 숫자의 무게가 보인다. 종가 기준 역대 최대 하락률은 9·11 다음 날인 2001년 9월 12일의 −12.02%였고, 글로벌 금융위기 한복판인 2008년 10월 24일이 −10.57%, 팬데믹 패닉의 정점인 2020년 3월 19일이 −8.39%였다. 오늘 장중 낙폭은 사반세기 만에 그 첫 줄과 겨루는 규모다.
이런 날이면 리스크 회의에서 반드시 나오는 표현이 있다. “몇 시그마 사건이냐”는 질문이다. 이 글은 그 질문에 실제로 답을 계산해 보고, 그 답이 드러내는 정규분포 기반 VaR의 구조적 한계와 실무적 보완책을 정리한다.
1. 계산: 8시그마, 그리고 6조 년
코스피 일간 수익률의 장기 표준편차를 1.5%로 잡자(설명용 대략치다). −12%는 8시그마다. 정규분포와, 같은 변동성을 갖도록 스케일을 맞춘 t분포(자유도 4)에서 각각 이런 날이 올 확률을 계산하면:
# 하루 -12%는 몇 시그마인가 — 정규분포와 t분포의 꼬리 확률 비교
from scipy.stats import norm, t
sigma = 0.015 # 코스피 일간 수익률 표준편차(장기 대략치 1.5%)
r = -0.12 # 이번 낙폭(장중 기준)
z = r / sigma # -8.0 → "8시그마 사건"
# ① 정규분포 가정
p_n = norm.cdf(z)
print(f"정규분포: P = {p_n:.2e} → 연 250거래일 기준 약 {1/(p_n*250):.1e}년에 한 번")
# ② 같은 변동성의 t분포(자유도 4) — 분산이 ν/(ν-2)배라 스케일 보정
nu = 4
s = sigma / (nu / (nu - 2)) ** 0.5 # std(s·T) = sigma 가 되도록
p_t = t.cdf(r / s, df=nu)
print(f"t(4)분포: P = {p_t:.2e} → 약 {1/(p_t*250):.0f}년에 한 번")
정규분포: P = 6.22e-16 → 연 250거래일 기준 약 6.4e+12년에 한 번
t(4)분포: P = 1.74e-04 → 약 23년에 한 번
정규분포의 답은 6.4조 년에 한 번 – 우주 나이(약 138억 년)의 460배가 지나야 한 번 올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실제로 왔고, 비슷한 규모가 2001년에도, 그보다 조금 작게 2008년과 2020년에도 왔다. 틀린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분포 가정이다. 같은 변동성에서 꼬리만 두꺼운 t(4)분포로 바꾸면 답은 “23년에 한 번”이 된다. 불가능한 사건이 아니라, 커리어에 한두 번 마주치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실제 시장 수익률의 꼬리가 정규분포보다 두껍다는 것은 반세기 넘게 축적된 실증 사실이고, 오늘은 그 최신 표본일 뿐이다.
2. 정규 VaR의 세 가지 함정
함정 1 – 파라메트릭 VaR는 꼬리를 “표준편차의 상수배”로 요약한다
99% 파라메트릭 VaR는 2.33σ다. 이 숫자는 분포의 몸통에서 추정한 σ에 정규분포의 꼬리 계수를 곱한 것이라, 몸통이 조용할수록 꼬리를 과소평가한다. 저변동성 국면 끝의 급락 – 정확히 오늘 같은 형태 – 에서 가장 크게 틀린다.
함정 2 – 역사적 시뮬레이션은 표본에 없는 사건에 무력하다
룩백 윈도(통상 1~2년)에 위기가 없으면 역사적 VaR는 위기를 모른다. 반대로 위기가 표본에 들어오면 VaR가 급등해 한도·증거금을 통해 포지션 축소를 강제한다 – 손실이 난 다음에야 브레이크가 걸리는 경기순응성이다. 오늘의 −12%는 내일부터 모든 역사적 VaR 표본에 들어가 이 두 번째 효과를 일으킨다.
함정 3 – VaR는 경계값일 뿐, 그 너머를 말하지 않는다
99% VaR가 3%라는 말은 “100일 중 99일은 손실이 3% 이내”라는 뜻이지, 나머지 1일에 4%를 잃을지 12%를 잃을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늘 같은 날의 손실 규모를 재는 지표로 VaR는 설계상 부적합하다.
3. 실무 보완: ES, 두꺼운 꼬리, 스트레스 테스트
- Expected Shortfall(ES) – VaR 초과 구간의 평균 손실. 바젤 시장리스크 개편(FRTB)이 내부모형 표준 지표를 99% VaR에서 97.5% ES로 교체한 이유가 바로 함정 3이다.
- 두꺼운 꼬리 분포와 극단치 이론(EVT) – t분포 적합, 또는 임계치 초과분만 일반화 파레토 분포로 적합하는 POT 방식. 꼬리를 몸통과 분리해 추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 스트레스 테스트 – 분포 추정 자체를 우회하는 보완책. 역사적 시나리오(2001·2008·2020, 그리고 오늘)에 가상 시나리오와 리버스 스트레스(어떤 시나리오면 자본이 소진되는가)를 더한다.
- 백테스팅과 예외 처리 프로세스 – VaR 초과가 발생한 날 무엇을 하는지(원인 분해, 한도 재산정, 모델 재검토 트리거)가 문서화되어 있어야 한다. 지표는 프로세스가 받쳐줄 때만 관리 수단이 된다.
4. 오늘 같은 날 시스템이 할 일
모델은 평시의 언어이고, 위기는 꼬리의 언어다. 두 언어를 오가는 것이 리스크 관리의 일이며, 오늘 당장의 실무 대응 – 증거금, 반대매매, 한도, 유동성 – 은 연이틀 서킷브레이커 체크리스트로 따로 정리했다. 커브 인프라를 다룬 지난 글과 같은 결론이기도 하다: 시장이 조용할 때 만들어 둔 것만이, 시장이 시끄러울 때 작동한다.
σ=1.5%는 설명을 위한 대략치이며, 실제 변동성 추정은 표본 기간·가중 방식(EWMA 등)에 따라 달라진다. 확률 수치는 분포 가정 간 차이를 보이기 위한 것으로, 특정 모델의 규제 적합성을 뜻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