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합병비율 1:0.1174540, 소수점 일곱 자리는 산식이 찍었다 – 올해 ±10% 재량을 쓴 상장사는 0곳이다

8월 25일 SK이노베이션이 SK아이이테크놀로지를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합병비율은 1 대 0.1174540. SKIET 주주는 1주당 SK이노베이션 신주 0.1174540주를 받는다.

소수점 일곱 자리짜리 이 숫자는 누가 정했을까. 협상의 결과가 아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가 정한 산식 – 기산일 기준 1개월 가중산술평균종가, 1주일 가중산술평균종가, 최근일 종가를 산술평균한 ‘기준시가’ – 의 출력값이다. 법은 여기에 재량도 붙여 놓았다. 기준시가에서 30%(계열회사 간에는 10%) 범위 안에서 할인·할증할 수 있다.

‘계열사 합병은 그 ±10%로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조정된다’는 통념이 있다. 올해 회사합병결정 공시 전수를 열어 확인해 봤다. 결과부터: 그 재량을 쓴 상장사는 한 곳도 없다. 재량은 다른 곳에 있었다.

1. 모집단 – 올해 회사합병결정 97건

DART에서 올해(1월 1일~8월 26일) 접수된 주요사항보고서(회사합병결정)는 원본 기준 146건, 그중 상장사(유가증권·코스닥) 공시가 97건이다. 이 97건의 원문을 전부 내려받아 합병비율·합병가액·산출근거를 파싱했다. 97건 모두 파싱에 성공했다.

(같은 기간 정정본은 242건 접수됐다. 정정이 원본보다 많은 구조는 유상증자 공시 전수조사에서 다뤘으므로 이 글에서는 원본만 본다.)

2. 97건 중 73건은 가격이 아예 없다

첫 번째 갈림은 산식 이전에 있다. 상장사 합병공시 97건 중 73건(75%)의 합병비율이 1 대 0이다.

1:0은 오기가 아니다. 100% 자회사를 흡수하면서 신주를 발행하지 않는 무증자 합병이라는 뜻이다. 소멸회사 주주가 모회사 자신뿐이니 교환비율을 정할 일도, 합병가액을 계산할 일도 없다. 조직 개편의 회계적 마무리에 가깝다. ‘합병공시’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딜 – 두 회사 주주 사이의 교환 조건 – 은 97건 중 24건, 4건 중 1건이다.

비율이 있는 24건에서 같은 딜의 양측 공시(존속·소멸 회사가 각자 공시) 5쌍을 접으면 딜은 19건. 그중 6건은 스팩 합병이고, 산식과 ±10% 논쟁이 실제로 걸리는 비(非)스팩 딜은 13건이다.

접수일 존속 : 소멸 비율 할인·할증 비고
02-19 APS : 제니스월드 1:0.1928726 언급 없음
03-09 로젠 : 모다이노칩 1:0.9754112 미적용 명기
04-07 파라택시스이더리움 : 파라택시스코리아 1:0.2806763 미적용 명기
04-09 엔피 : 위지윅스튜디오 1:0.5774514 미적용 명기
04-14 알에프텍 : 에코볼트 1:0.4053487 미적용 명기
04-15 온코크로스 : 온코마스터 1:5.2100960 미적용 명기
05-13 대한항공 : 아시아나항공 1:0.2736432 미적용 명기
05-18 휴온스 : 휴온스랩 1:0.4256893 미적용 명기
05-21 세기상사 : 우양수산 1:1306.4048276 언급 없음
06-25 젠큐릭스 : 제노픽스 1:5.3591461 언급 없음
06-30 휴맥스 : 휴맥스홀딩스 1:0.9646707 미적용 명기
08-21 진에어 : 에어부산·에어서울 1:0.2862684 / 1:0.7501939 미적용 명기 한 공시에 두 건
08-25 SK이노베이션 : SK아이이테크놀로지 1:0.1174540 미적용 명기

올해 비스팩 합병 딜 13건 전체. 접수일은 원본 공시 기준. ‘딜’은 존속회사 기준 공시 묶음이다 – 진에어처럼 한 공시에 흡수 두 건이 담기면 딜 1건, 법적 합병 건수(회사쌍)로는 2건이다.

3. ±10% 재량, 쓴 곳은 0건

13건의 산출근거를 읽으면: 10건은 “할인 또는 할증을 적용하지 아니하였다”고 명시했고, 3건(APS·세기상사·젠큐릭스)은 할인·할증 문구 자체가 없다 – 적용했다는 기재도 없고, 상장 측 합병가액이 산식값 그대로여서 산술적으로도 0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SK이노베이션-SKIET, 휴맥스-휴맥스홀딩스, 로젠-모다이노칩 – 올해 계열 상장-상장 합병은 전부 산식값 그대로였다.

스팩 6건은 반대로 전부 할인을 적용했다. 이것도 같은 조항의 같은 할인·할증 문구다 – 다른 것은 한도뿐이다. 스팩과 대상회사는 계열이 아니어서 한도가 ±30%이고, 스팩 측 기준주가를 공모가 2,000원으로 되돌리는 관행적 할인이 쓰인다(디비금융12호 9.69%, IBKS24호 10.11%, 유진10호 3.98% 등 – 10%를 넘는 할인이 실재하는 이유다). ‘±10%를 안 썼다’는 관찰은 계열 합병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두 한도를 섞으면 틀린다.

왜 아무도 안 쓸까.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구조는 짚을 수 있다. 할인·할증은 ‘어느 쪽 주주에게 왜 유리하게 조정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선택이고, 산식 그대로는 설명할 것이 없는 선택이다. 합병 무효·배임 소송의 준거가 산식인 이상, 산식을 벗어나는 쪽이 소송 리스크를 진다. 재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재량을 쓰는 비용이 커서 안 쓰는 균형에 가깝다.

산식 안에 다른 갈림길이 하나 있다는 것도 적어 둔다. 기준시가가 자산가치에 미달하면 자산가치를 합병가액으로 택할 수 있다는 단서(같은 조항 1항 2호)인데, 올해는 APS 딜이 이 길을 밟았다 – 기준시가 4,789원이 자산가치 12,459원에 미달해 자산가치를 합병가액으로 썼다(공시 원문 기재). 할인·할증 재량과는 다른, 법이 열어 둔 선택지다.

4. SK 산식, 원 단위까지 재현된다

그 산식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 SK 건으로 재현해 봤다. 기산일은 8월 24일 – 법령 정의로는 ‘이사회 결의일과 합병계약 체결일 중 앞서는 날’의 전일인데, 이 딜은 이사회(8월 25일)가 앞섰다.

1개월 가중평균 1주일 가중평균 최근일 종가 산술평균 공시 합병가액
SK이노베이션(존속) 118,611 128,874 130,100 125,862 125,862 ✓
SK아이이테크놀로지(소멸) 14,364 14,676 15,310 14,783 14,783 ✓

단위: 원. DART 원문(rcpNo 20260825000424·20260825000420)의 산출근거 수치로 재계산.

14,783 ÷ 125,862 = 0.1174540. 공시 비율과 소수점 일곱 자리까지 일치한다. 참고로 SKIET 이사회 산하 특별위원회(독립이사 전원 구성)가 선임한 재무자문사(삼정회계법인)가 산출한 수익가치 기준 적정 범위 1:0.1095925~1:0.1257201도 이 산식값을 범위 안에 두고 있다(이 범위는 공시 원문 기재 수치의 인용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합병가액은 기계가 찍는 숫자다. 그런데 기계에 넣는 날짜가 어느 달을 쓸지를 정한다.

5. 기준시가 딜에 남는 변수는 기산일이다

산식은 기산일로부터 1개월 치 주가를 끌어온다. 즉 이사회와 계약 중 앞서는 일정이 언제냐가, 어느 한 달의 주가를 쓸지를 정한다.

SKIET 주가는 공시 직전 한 달간 오르는 중이었다. 그래서 1개월 가중평균(14,364원)이 최근 종가(15,310원)를 끌어내려, 합병가액 14,783원은 기산일 종가보다 3.4% 낮다. 합병비율만 보면 이 효과는 상당 부분 상쇄된다 – 양사가 같이 올랐기 때문에 종가만으로 계산한 비율(1:0.117679)과 산식 비율(1:0.1174540)의 차이는 0.2%에 그친다. 비율에는 방향이 아니라 두 회사 주가 경로의 ‘차이’만 남는 구조다.

상쇄되지 않고 남는 곳이 주식매수청구권이다. 합병에 반대하는 SKIET 주주가 회사에 주식을 팔 수 있는 매수예정가격은 14,620원 – 합병가액보다도 1.1% 낮고, 기산일 종가보다는 4.5% 낮다(매수청구 가격은 2개월·1개월·1주일 거래량 가중평균을 쓰는 또 다른 산식으로 계산된다). 주가가 오르는 국면에서는 산식의 평균이 시가를 체계적으로 밑돌고, 그 괴리는 고스란히 ‘반대해서 파는 값’의 괴리가 된다.

이걸 ‘이사회 날짜를 골랐다’고 읽는 건 과하다. 이사회 날짜는 실사와 승인 절차의 함수이고, SK 딜은 이미 6월 10일 풍문 해명 공시로 시장에 알려져 있었다 – 직전 한 달의 상승 자체가 합병 기대의 반영일 수 있다. 정확한 서술은 이렇다: 날짜가 가격을 정하는 구조이고, 예고된 딜일수록 기대가 주가에 먼저 실리는 만큼 매수청구가는 시가를 더 밑돌게 된다. 누가 날짜를 골랐다는 증거와는 별개로, 괴리는 구조가 만든다.

한 가지 더: SK이노베이션 쪽 주주에게는 매수청구권 자체가 없다. 발행주식 대비 신주 비율이 작은 소규모합병(상법 제527조의3) 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단서는 있다 – 발행주식총수의 20% 이상을 가진 주주가 반대를 통지하면 소규모합병은 무산되고 정식 절차로 돌아간다(반대 접수기간은 9월 9~23일). 같은 딜인데 한쪽 주주만 출구 가격을 갖는 비대칭도, 비율 숫자에는 안 보이는 정보다.

6. 공시 데이터의 품질 한 줄

전수 파싱 중 발견한 것 하나. 파라택시스이더리움의 4월 공시는 합병비율 입력 칸에 “1:02806763″이라고 적었다 – 소수점이 누락된 오기다. 같은 공시의 산출근거 본문과 상대측 공시에는 1:0.2806763으로 바르게 적혀 있으니, 표 칸만 자동 검증 없이 통과한 셈이다. 공시 원문을 기계로 읽을 때는 이런 사례를 감안해야 한다. 공시가 고쳐지는 메커니즘 일반은 주요사항보고서 4건 중 1건은 정정된다에서 다뤘다.

7. 실무 체크포인트 – 비율 숫자보다 먼저 볼 네 가지

1:0인지부터 확인. 올해 합병공시의 75%는 교환비율이 존재하지 않는 무증자 흡수합병이다. 알림 시스템이 ‘합병’이라는 단어에 반응하게 돼 있다면 4건 중 3건은 노이즈다.

기산일과 직전 한 달의 주가 경로. 합병가액의 변수는 ±10% 칸이 아니라 기산일에 있다. 기산일 직전 한 달 주가가 어느 방향으로 왔는지가 합병가액-시가 괴리의 부호를 정한다. SKIET는 상승 국면이라 −3.4%였다.

매수청구 예정가격 대 현재가. 반대 주주의 출구 가격이 시가 대비 어디 있는지가 딜의 실질 하방이다. 매수청구가가 시가를 크게 밑돌면 반대는 비싸지고, 웃돌면 청구 물량이 딜 자체를 흔든다(합병계약에는 대개 매수청구 한도 조항이 있다).

소규모·간이합병 여부와 그 단서. 매수청구권이 아예 없는 쪽이 어디인지는 비율이 아니라 합병 유형이 정하고, 소규모합병에는 20% 반대 통지라는 뒤집기 조항이 붙어 있다. 공시 발표와 실제 서류 사이에 무엇이 더 나오는지는 네이버 ‘100억 달러’ 발표와 공시 사이의 틀 그대로다.

±10%는 통념 속에만 있었다. 데이터에 있는 것은 1:0 일흔세 건과, 날짜가 가격을 정하는 조용한 구조다.


자료: 금융감독원 DART Open API, 2026년 1월 1일~8월 26일 주요사항보고서(회사합병결정) 접수 388건(원본 146, 정정 242) 중 상장사 원본 97건의 공시 원문 전수 파싱, 2026년 8월 26일 조회. SK 건은 rcpNo 20260825000424(SK이노베이션)·20260825000420(SK아이이테크놀로지), APS 건은 rcpNo 20260219001235. SKIET 특별위원회 재무자문 범위와 APS 자산가치 수치는 공시 원문 기재의 인용이다. 근거 법령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76조의5(합병가액 산정·할인 한도·기산일), 제176조의7(매수청구 가격)·자본시장법 제165조의5(주식매수청구권), 상법 제527조의3(소규모합병). 이 글의 수치를 만든 코드는 github.com/faros0852/faros-insights에 공개돼 있습니다(analyses/merger_ratio_census.py – 실행에 원문 약 100건 다운로드로 2분쯤 걸리고, 합병가액-기준시가 산술 검산을 포함합니다). 같은 원자료로 직접 돌려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